lowlander.egloos.com

저지대

포토로그



정세랑, 서울숲, 막회

1.




서울숲은 공원 전체가 꼭 회화 같아서,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치는 도시의 색깔없음에 당황하게 된다. 특히나 가을처럼 자기주장 강한 나무들이 빽빽한 계절에는. 추위가 온다는 소식을 앞두고 주말 서울숲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흰 개, , 웨딩스냅사진, 캠핑의자, 비눗방울로 소란한 산책. 남자친구가 얼마 전 수업 중 발을 다쳐서 우리는 조금 걷다 앉아 쉬고, 또 조금 나아갔다 앉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남긴 몇 장들.

 

2,

12월의 벌칙과도 같은 건강검진을 앞두고, 그간의 망아지 같았던 음주생활을 회개하고자 요 며칠 운동을 다니고 있다. 트레드밀에 올라, 길모어걸즈의 아무 시즌 아무 에피소드를 재생한 뒤 로렐라이 길모어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속도를 9로 올리고 그녀가 사라지면 속도를 낮추는 식의 길모어 인터벌 러닝. 실패. 비중이 너무 많은 그. 어떻게 해서든 게임 요소를 찾고자 하는 노력 중이다. 건강해야 오래 먹고 마시지.

 





어제 본 에피소드는 로렐라이와 루크 데인즈의 첫 데이트.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하며 루크가 지갑에서 horoscope을 꺼내는 순간, 로렐라이는 말을 잃는다. 로리와 패리스의 학생회 러닝메이트 에피소드만큼이나 좋아하는 이야기. 나는 왜 최선을 다하는 순정 이야기가 이렇게 좋지.

 

3.

나는 정세랑을 참 좋아하는데, 그건 이 작가가 제 손안에서 굴리고 있는 유머감각과, 그 재능을 발휘해 쓰는 단란한 세계 때문이다. <보늬>의 마지막 문장처럼.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잠시 그러고 있을 양쪽을 킁킁대보았으나 눈물 냄새는 나지 않았다우리는  어두운 겉껍질 부스러지는 속껍질 사이에 누운 하얀 밤벌레들 같았다.’

    

 

하얀 밤벌레들. 같이 웅크려 단란히 슬퍼하고 기뻐하는 공동체 안의 우리. 한편, <덧니가 보고 싶어><지구에서 한아뿐>까지 최근 정세랑의 초기 장편 개정판을 읽고나니, 이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완결된 형태의 구원과 안도는 11 관계 안에서의 유성애적 위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계 안에서 정의되고 집을 찾는 나.


 




어쩌면 우리는 아직 이어져 있는 걸지도 몰라. 성층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냄새 나는 연기둘로부터 안전한 높은 하늘에 우리가 이어져 있는 어떤 망이나 막 같은 게 있는 걸지도. 텔레파시랄 것까진 없지만, 내가 널 오래 생각하면 너도 날 짐시쯤은 생각해줄지 모른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상상하면 평소보다 벼텨내는 것이 편해지는지, 아니면 더 지겨워지는지.’

 


촌스럽고 항구적이다. 존재의 위기를 분석하고, 불안을 해체하고, 거시 앞에 짙눌리는 미시사는 누군가 쓰고 있다. 기꺼이 내가 읽고 있기도 하고. 정세랑은 정세랑적으로 촌스럽고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했으면 좋겠다. 종종 단란하고 담백한 이야기도 쓰면서.

  


  

4.

지난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던 날, 충무로 영덕회식당에 다녀왔다. 가게가 좁고 대부분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라 회전율이 떨어졌다. 웨이팅 꽤 했음. 막회를 시키면, 처음엔 소스를 끼얹지 않고 담백한 상태로 김에 몇 번 싸 먹다가 소스를 섞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집밥 같은 삼삼한 맛이 좋아서 술이 들어가는 그런 안주.






 이제 막 패딩을 꺼내 입기 시작해 부피가 큼직큼직한 손님들, 일력을 쓰는 노포, 깨끗하게 닦인 거울, 직접 술을 꺼내다 먹는 냉장고. 거기 앉아서 무릎을 맞대고 있는데, 조나단님에게 커미션을 드릴 액자 수채화의 장면을 구체화하게 됐다. 이런 장면을 담아 머리맡에 두고 싶어졌다. 다정하다가 취향의 차이로 말싸움을 하다가 재방문 의사를 서로 묻는 그런 톤.

    

 

5.





프리퀀시를 모두 모았다. 손에 들어온 진초록 다이어리.

 




산드라 불록, 슈퍼마리오, 캐롤 눈치싸움

1.
엄마와의 싸움이 이제는 너무 피로하다. 저 사람은 내가 원하는 규모의 인정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는 내내 무엇을 기다려왔나. 포기하면 쉬운데 늘.


2. 



투윅스 노티스를 오랜만에 또 봤다. 나는 이 영화에서산드라 불록이 짓는 표정들이 너무 좋다. 본인을 꺾지 않고, 지적이며 유능한 얼굴. 역시 로맨틱코미디(그것도 휴 그랜트)의 톤 안에서 제일 매력을 발한다. a little rough around the edges.



"She's rather like the building she loves so much. A little rough around the edges, but when you look closely, absolutely beautiful. And the only one of her kind."

3. 
저화질 레이스에 반응하는 심장. 남자친구는 게임을 잘 봐주지 않는 류의 인간이었다.







4.
현황


근데 이미 루나파크 내년 다이어리 펀딩을 해버렸다. 분홍색 표지에 구름 같은 알파카 그림.

5.
캐롤을 들어도 되겠지 슬슬
나 제프버넷 크리스마스 앨범 좋아해ㅋㅋㅋ





10월의 순간들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의 스타벅스 홀리데이 다이어리를 꼭 얻겠다는 마음으로 프리퀀시를 모으고 있다. 일단은 이번 해 마지막 목표가 될 예정.


1. 10월 첫주에는 제주에 다녀왔다. 나를 관찰하고, 규정하거나 어림잡는 눈빛들. 섣불리 어려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몸이 아주 녹초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사진을 찍으면서, 언젠가 썼던 글의 썸네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네. 소설적인 인력까진 아니어도, 확실히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 오래 구속력을 가졌으면 한다.



2. 대전 마작 기행. 오랜만에 내 코니카 빅미니와 함께했던 여행이다. 다섯으로 이루어진 이 구성원들은 나에게 한 '단위'로 여겨진다. 교집합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각자의 영역에 호의를 기반으로 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집단의 최소단위. 다섯명.










부추빵 맛있어. 튀소랑 세트로 사갔는데, 가족들 반응도 압도적인 부추win. 약간의 만두소st 맛이 핵심이다. 사당 동그랑땡도 생각나는 맛.


3. 선물 이것저것들. 2019년 농사의 열매들은 채색도구가 사용된 공예들로 남을 것 같다.











4. 10월의 독서회 책,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아메리카나>.





꽤 볼륨이 있는 2권짜리 책이었는데도, 부담스럽다는 생각 없이 단숨에 읽었다. 오빈제와 그밖의 구남친 군단들을 욕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페멜루가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좌표를 옮기면서 획득하게되는 그 소수자성과 그의 당혹감이 오래 남는다. 드라마화 된다고 하던데, 책표지와 같이 아름다운 색감들을 기대한다. 디케가 평안했으면 좋겠다.

5.


이 사진이 너무 좋아. 오빠가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 연애시절 사진을 많이 가져갔다. 산에서 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던 방법이라고 자랑하는 아빠. 곧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가족은 규모가 줄어들 일만 남아있고 나는 부모가 그 과정을 덤덤히 수용하기를 긴장 상태로 빌고 있다.
 


오빠와 햇빛과 레고. 이런 서정적인 순간들이 이 인간의 신체 어느 부분을 이루고 있을지 짐작도 어렵다만ㅋㅋㅋ.

6.
확신이 어디에서 왔냐고 벌써 세번째 누군가들이 물었다. 꼭 붙들고 놓칠까봐 길목마다 살피는 일을 그만두는 그런 안도에서 시작됐다고, 일단은 답안을 작성해본다.









curly fries, national geographic, vivienne westwood




사진 속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이다. 이 날, 기도하는 심정으로 쓴 편지를 소포에 넣었고 우체국 직원이 등기를 접수하자마자 후회했다. 지나치게 많은 말들을 썼다고.



극사실주의 야채김밥. 우엉이 많아서 좋았다. 비닐봉지에는 후식용 약과가 함께 들어있었다. 미니약과 말고 legit 약과.



언젠가의 해장용 탄산. 그러고보니 숙취상황에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문장인듯ㅋㅋㅋ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내맘대로 문구를 신청할 수 있다면, 나는 <경애의 마음>을 뒤적이며 뭘 골라야할지 조바심을 낼 것 같다.

cover page




헤엄 같은 기록.



1